생방송 능욕 레전드 정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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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능욕 레전드 정수라

1 3 분전 2023. 1. 2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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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능욕 레전드 정수라

대한민국의 가수. 1980년대 중반 나미, 이선희와 함께 여성 트로이카로 불렸던 1980년대를 상징하는 여가수 중 한 명이었다.

1963년 12월 13일(음력 10월 28일) 서울특별시 출생.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74년,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함중아 작곡의 '종소리'를 불러 인기상을 수상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주로 CM송이나 만화영화 주제가 등에서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성인이 된 후인 1982년에,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1983년에, 앨범에 수록된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에도 '도시의 거리'(1985), '난 너에게'(1986)[4][5], '환희'(1988)[6] 등을 히트시켜 80년대를 상징하는 여자 가수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아! 대한민국'은 그녀에게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수여해 준 대표곡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흑역사다. 1983년에 '아! 대한민국'으로 KBS, MBC에서 여자 신인 가수상을 받고 스타덤에 올랐지만, '아! 대한민국'이 그 당시에 제2의 애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전두환 정권의 체제 홍보용으로 널리 쓰이면서 "어용 가수", "관제 가수" 소리를 할 정도로 정수라를 곱게 보지 않았던 시선도 존재했던 것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는 경기가 끝나면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이 지겹도록 나왔고, 정수라 자신이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7] 1988년에 '환희'를 히트시킨 이후에는 TV활동을 자제했고 미국 진출을 계획해서 미국으로 떠나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앨범 발매가 무산되어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8] 그 뒤에는 오랜 공백기로 인해서 당시 그녀의 나이[9]와 맞물려 재벌 총수의 아들을 몰래 낳아 5백억 원을 받았다는 등의 악성 루머에 시달렸고 스타일의 변화로 인해서 히트를 못 치다가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가요계가 재편성되면서 주류 가요계에서 밀려났다. 나중에 언론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이를 해명했다.# 당시는 인터넷 같은 게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유언비어급 헛소문이 많이 돌았다. 심지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유명 배우(고두심, 노주현 등)의 사망설이 열흘에서 한 달 넘게 회자되기도 하고, 정말 가관인 것으로는 서태지 여장설에 임신설까지 있을 정도였다. 결국, 대부분 출처없는 소문으로 일부는 연예 기자 등에 의해 악의적으로 부풀려졌다. 이런 루머들 때문에 이지연이나 이상은은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면서 아예 가요계를 떠나서 은퇴를 하거나 대중적 인기를 배제한 뮤지션의 길을 가게 되었다. 참고로, 1992년에 '오늘 같은 밤이면'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박정운과 듀엣으로 잭슨파이브의 'I`ll Be There'를 불러 가창력을 뽐낸 적이 있다.

 

정수라는 2005년 변진섭의 소개로 사업가 장모 씨를 만나게 되었고 이듬해인 2006년 결혼했다. 그녀가 결혼을 늦게 한 이유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홀어머니와 언니까지 셋이 함께 살면서, 어릴 때부터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정수라 본인의 말로는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장애인인 언니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신은 평생 결혼을 안 하고 살게 될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결혼 이후 남편에 대해 "저는 남편이 힘들고 지친 나를 구제해줬다고 말해요. 제가 가수로 데뷔한 뒤 20년 이상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사실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가수 일 외에도 끊임없이 떠도는 루머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통도 겪었고요. 남편은 그런 저에게 안식처가 돼줬어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 장 씨는 한때 중견 규모의 민자역사 운영과 부동산업 등을 주업으로 하는 건설사 대표이사직을 맡았으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음 배서란에 대표이사 서명을 해 5억 5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구속된 바도 있었다. 남편 장 씨의 사업실패와 여러 가정적 이유 등으로 2013년 이혼했다. 이러한 사실은 2015년 복면가왕으로 재조명을 받은 이후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https://youtu.be/LjPfNDLHyvQ

정수라는 꽃돼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통통한 가수'로 친근한 이미지를 얻고 있었는데 1989년 MBC 생방송 프로그램 '화요일에 만나요'에서 몸무게가 공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녀는 벌칙 룰렛을 돌렸는데 몸무게 공개가 걸리자 팔짝 뛰었다.

하지만 생방송 중 나가버릴 수도 없고 제작진도 다시 돌리는 등의 조치도 취해주지 않아 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체중계에 올라 공개를 당했고, 엔딩 무대 때 울면서 노래를 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다음에 이택림은 시청자들로부터 큰 질책을 받았다. 다만 이건 이택림이 일부러 한 게 아니라 룰렛판에 있는 벌칙 때문에 그런 거고 PD가 강제로 계속 시키는 바람에 자기도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정작 PD는 사태의 원흉이면서도 사과는 커녕 모르쇠로 일관 했다고. 참고로 그 당시 나온 몸무게는 62kg 패널로 나오던 김종찬이 정확하게 몸무게를 맞춰서 상품을 탔고 이광조는 현재 프로필상 등록되어 있는 몸무게를 예언한 셈이다. 영상을 보면 이택림이 옷이 20kg 나가고 신발이 5kg 나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그 무게를 감안해서 재겠다는 등 정수라를 달랬고 그녀의 무대 이후 이광조 차례가 되기 전 옷과 신발 무게를 빼면 실제 몸무게는 40kg 나간다는 말을 했다. 요즘에 이런 방송이 나가면 캡쳐본이 SNS와 기사에 일파만파 퍼지는 건 기본이고 시청자의 강한 항의로 프로그램이 없어질 수도 있었으나 당시에는 전화로만 시청자 의견을 표명했던 시절이라 여론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이 방송은 1990년 10월까지 방송되었고 이택림은 여러분의 인기가요로 이전하여 1992년 초까지 진행했다. 따지고 보면 당시 그녀의 체중은 많이 나가는 것이 아니다. 화면상으로 많이 통통하게 나오지만, 얼굴이 좀 크고 둥글둥글한 데에다 골격이 큰 편이고, 무엇보다 키가 크기 때문. 프로필 상의 키가 165cm인데, 정수라를 직접 본 사람들 중에 2~3cm 더 클 거라는 추측을 하는 경우도 있다. 165cm만 해도 성장이 멈춘 2020년대 한국 여성 평균 키를 가뿐히 넘기는 데다, 당시는 매우 큰 키였다. 어쨌든 이 사건이 준 충격으로 인해 다이어트를 감행하여 날씬한 체형이 되었다. 2010년대 이후 나이가 나이니만큼 다소 체중이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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